지난 24년 7월,
나는 대통령과학장학금 대상자로 최종 선발되었다.
나 스스로도 기대하진 않았던 엄청난 성과였다.
그래서였을까.
수여식에 참가할 생각에 정말 많이 들떠있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가 무색하게도,
24년이 끝나가는 시점까지도 수여식에 대한 이야기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물론 장학금은 잘 지급되었다)
이에 대해 답답한 마음에 한국장학재단 우수장학부에 직접 문의를 했었다.
근데 한국장학재단도 일정을 위쪽에서 전달받는 거라서 잘 모르겠다더라.
나중에서야 짐작하게 된 것은,
누군가 거사를 치르시겠다고 우리 따위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것뿐이다.
여하튼 이번 수여식은 없겠구나 체념하며 해가 바뀌었다.
우리 수여식, 정상 영업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인턴 중에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최종 선발로부터 반년이 넘게 지난 이제서야 수여식을 진행하겠다는 것.
해주는 게 어디인가 싶어 날짜를 봤더니
이럴 수가.
날짜를 참 기가 막히게 잘 골랐다.
개강 이후에 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금요일도 아닌 평일 중간이라니.
나보다 먼저 대장금을 받았던 지인은 별 거 안 하니까 갈 필요 없대서 고민을 좀 했다.
수여식에 참여한다면 중요한 전공 수업을 못 듣게 되기도 하고...
근데 이런 때가 아니면 또 언제 이런 행사에 가보겠는가.
(그리고 솔직히 R&D 예산삭감에 대해 무슨 말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싶어 궁금했다)
그렇게 2월 27일 목요일, 드디어 수여식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
작년 여름의 끝에서 수여식을 기다리며 사뒀던 벨리에 스트라이프 셋업...
드디어 입을 수 있었다.
행사장 위치는 코엑스 마곡 르웨스트홀.
도착은 09시 20분까지라고 나와있었으나 출발이 늦어서 40분쯤 도착했던 거 같다.
그래도 본 행사 시작이 10시여서 그런가 큰 문제는 없었다.
접수처 앞쪽의 포토존에서는 우주복을 입은 스태프분들이 사진을 찍어주고 계시더라.
아는 사람 없이 혼자라서 망설였으나.. 역시 남는 것은 사진뿐 아니겠는가.
짐 정리 후에 바로 사진을 찍었다.
늦잠 자서 머리를 깔 시간이 없었던 게 아쉽기만 하다.
(와중에 표정은 또 왜이리 굳어있니...)
1부
행사는 1, 2부로 나뉘어 있었다.
분명 모든 인원이 참석하지는 않았을 터인데도 꽤 북적였다.
1부는 대통령과학장학생(학부, 대학원)과 국제 올림피아드 수상자들에 대한 증서 수여 및 초청 강연
2부는 대통령과학장학생 대상 성장지원 행사
주요 인사로는 과기부 장관이 참석하여 수여증을 전달하셨다.
어째 경호인력이 없다 했더니 원래 오셔야 하는 분들께서 올해에는 참석하지 않으셔서 그랬나 보다.
수여식은 사실 뭐 크게 볼만한 건 없었다.
다만 수여식에 중고등학생 국제 올림피아드 수상자들도 자리했는데
내가 한 일이 아닌데도 괜히 뿌듯하더라.
초청 강연은 성균관대 나노공학과의 정연욱 교수님께서 해주셨다.
이후에는 장관님과 교수님께 질문을 할 수 있는 세션이 있었는데
일찍 도착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질문을 미리 받았는지 사회자가 호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그런줄 모르고 혹여나 내 차례가 올까 봐 열심히 질문을 생각했다.
진짜 내 차례가 왔다면
"실패를 많이 경험하라고 하셨는데 인생은 실전이기에 한 번의 실패가 모든 것을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과학자들의 실패에 대해서는 굉장히 인색한데 이를 보완할 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하려 했다.
(나중에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분들과 이야기했더니 본인들도 다 그랬다더라
심지어 다들 내가 질문하려했던 내용을 듣더니 본인들도 이 질문을 하려 했다고 ㅋㅋㅋ)
질문자 중에는 같은 학부 수업을 들었던 대학원생도 있어서 뭔가 반가웠다.
꽤 훌륭했던 점심
1부 행사가 마무리되고는 점심 식사가 제공되었다.
의외였던 점은 이런 행사의 국룰과도 같은 적당히 비싼 도시락(e.g. 본도시락)이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웬 코스요리가 나왔던 것.
참깨를 곁들인 참치 타다끼와 소야 무슬린 소스
아스파라거스 크림 스프와 크루통
버섯소스를 곁들인 꽃등심 구이와 계절야채
블루베리소스 치즈케이크
스프는 맛은 있었지만 딱히 예쁘지는 않아서 안 찍었던 것 같다.
함께 나온 빵도 꽤 맛있었다.
음식들이 전반적으로 맛있어서 '와 이게 대접받는다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사람은 일단 성공을 하고 봐야 하나 보다.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분들과 스몰토크를 나누며 식사를 했는데
다들 학식만 먹다 이런 걸 먹으니 적응이 안 된다는, 그런 비슷한 반응들을 보여서 재밌었다.
하긴 대부분의 학부생이나 대학원생이 평소에 코스요리를 얼마나 먹으러 가겠는가.
내가 앉았던 테이블에는 유독 대학원생이 많았는데
서로의 연구실 상황, 번아웃 상황은 어떻게 극복하는지 등,
각자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게 꽤 재밌었다.
특히 각자가 뽑힌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다들 선발된 사람들답게 전략적인 선택을 잘하셨더라.
나는 다른 분의 답변을 듣고 비로소, 나눔과 배려, 사회에 대한 헌신 의지에서 큰 점수를 받았겠구나 싶었다.
한편 그중에는 내가 한때 꿈꿨던 김빛내리 교수님의 랩실에 계신 분도 있었는데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2부
여하튼 기분 좋은 식사 시간이 지나고 장학생 대상의 2부 행사가 진행되었다.
필참은 아닌지라 일찍 떠나시는 분들도 있었다.
기빨릴 게 뻔해 보여서 나도 그냥 나가고 싶었지만, 기차 시간을 바꿀 수가 없어서 참여하게 되었다.
하
역시 아니나 다를까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이 시작되었다.
우리 테이블이 너무 뒤에 있다 보니 앞으로 옮기며 멤버가 약간 달라졌다.
서울대 생명과학 대학원생 세 분이 추가되었는데 다들 굉장히 인싸스러우시더라.
A4 용지 8장으로 탑 쌓기라든가, 사회자와 가위바위보 등의 이벤트가 정신 차려보니 휙휙 지나갔다.
이런 것도 좀 익숙해지고 즐겨야 할 텐데
참... 매번 쉽지는 않다.
아이스브레이킹 후에는 잠시 테이블 외의 인원들과도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테이블들을 돌아다니며 연락처를 열심히 수집하던 카이스트 2학년 학부생이 기억에 남는다.
참 용기 있는 친구라고,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이후에는 LG 사이언스파크의 직원분들의 소개 및 강연이 1시간 정도 진행된 후에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마무리, 그리고 내게 남은 것
일전에 사업하는 친한 형을 따라다니며 몇몇 네트워킹 행사에 참여했었다.
매번 매끄럽지 못한 진행, 그리고 소득 없이 시간만 날렸던 경험 때문에 실망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걱정과는 달리 이번에는 꽤나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특히 갈라파고스 같은 디지스트에 갇혀 살다가
보다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과학도들과 만나 서로의 관심사를 나눌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퍽 만족스러웠다.
마음에 들었던 분들과는 링크드인과 인스타, 전화번호를 교환하며 좋은 곳에서 다시금 만날 날을 기약했다.
아마 이 분들은 매우 높은 확률로 또 만나지 않을까?
그러길 기대해 본다.
행사장을 나오기 전에는 못다 찍었던 사진들을 더 찍어보았다.
행사장 단상에서도 한 방 찍어보고
폴라로이드 사진도 놓치지 않았다.
전공 수업도 듣지 못하고
피로감도 많이 쌓였던 고된 일정이었지만,
나와 비슷한 길을 가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참 귀중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수여식은 대통령과학장학생이라는 타이틀에 대해 한번 더 성찰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아직 이룬 것이 많이 없는 상태에서
'너무 과분한 타이틀을 받은 게 아닐까?'
라고 계속 생각했다.
솔직히
부담도 많이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나를 뽑은 이유가 있겠지.
나는 그들이 봐준 나의 가치를, 성장 가능성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타이틀의 무게에 짓눌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 대단해져서
내가 가진 가치 있는 것들 중 하나가 되기를.
이 무게가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
23기 신청이 시작되기 전에 대장금 자체에 대한 후기를 작성해보려 한다.
블로그 개설이 늦어져서 아직까지 못 올렸을 뿐, 개략적인 내용은 노션에 정리해 뒀다.
아마 곧 올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