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스트에는 딘즈리스트(Dean's Lists / 약칭 딘리, 딘즈, ...)라는 상이 있다.
거창한 것은 아니고, 직전 학기 성적이 4.3 만점에 4.0을 넘기면 주는 소소한(?) 상이다.
전공에 따라 난이도가 다소 상이하기는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 상을 받았다는 것은 열심히 살았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마침 오늘 24년도 2학기 딘즈리스트 수상자 명단이 공개되었다.
이전에는 내 이름만 보고 바로 꺼버려서 누가 받았는지 잘 몰랐는데, 이번에는 왠지 모르는 호기심에 한 명씩 훑어보게 되었다.
그런데 웬걸.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몇몇 이름들도 명단에 있던 게 아닌가.
분명 내가 아는 그들의 이미지는 공부는 하나도 안 하고 놀기만 할 것 같은 그런 이미지였다.
그 순간 함께 수업을 듣는 후배의 입에서 내가 몰랐던 그들의 삶이 펼쳐졌다.
문득, '오만함'이라는 단어가 내 대뇌에 못 박히듯 꽂혔다.
실로 오만하지 않은가.
보고 또 봐도 모르겠는 게 타인이며, 그 이전에 자신조차도 완벽히 파악하지 못하는 게 인간이란 존재인데.
나는 무슨 자신감이었길래, 그 사람들의 티끌로 그들을 평가했는가.
그렇지.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번뜩이는 무언가가 있으니 이 대학에서 버티고 있는 것인데.
불현듯,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나란 인간은 대체 무엇인가...'
지난날,
마음이 버티지 못해 꽤 오래 심리상담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동안 쌓인 이유야 많았으나, 개중에는 나와 조금씩 다를 뿐인 사람들에게 느꼈던,
그런 말도 안 되는 혐오감도 있었다.
상담사님과 함께 이야기하며, 나는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벌써 1년이 넘게 흘러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저 다른 거예요. 그냥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을 뿐이에요."
이와 유사한 맥락의 조언을 들었던 것 같다.
'평가하지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이것이 그로부터 내가 얻었던 아주 중요한 교훈이었다.
그리고 한동안은 분명,
그렇게 살아왔고, 덕분에 마음이 비교적 편안했다.
하지만 하루 바삐 흘러가는 일상에 교훈마저 풍화되어 버린 것일까.
다시 바빠진 삶 속, 잃어버린 여유 때문일까.
어느샌가 다시 과거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과거의 상처와 그로부터 얻은 교훈을,
나는 망각해 버렸다.
'나란 인간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적어도 오늘 내가 부끄러워했던,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지는 않다.
'비평가'가 되기보다는 '이해자'가 되자.
좋은 점만 보고 살기에도 바쁜 인생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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